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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레비의 해커스 : 세상을 바꾼 컴퓨터 천재들>

이 책은 1950년대 컴퓨터 산업이 막 시작했을 무렵부터, 1980년대 실리콘 밸리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단순히 계산만을 위한 기계였던 컴퓨터가 어떻게 현재와 같은 만능기계로 변모했는지 알 수 있다. 책의 저자는 IT 분야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스티븐 레비이다. 다른 대표적인 책으로는 "in The Plex 0과 1로 세상을 바꾸는 구글, 그 모든 이야기"가 있다.


책에서는 컴퓨터가 막 태동하는 시기인 1950년대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먼저 이 당시의 원시적인 프로그래밍 환경에 놀랐다. 당시에는 어셈블러 조차도 없었기에 기계어를 일일히 천공카드에 기록해야 했으며, 프로그램을 구동할때마다 카드뭉치를 넣었다 뺏다 해야 했다. 이마저도 1940년대 ENIAC 마냥 플러그를 끼웠다 꼽았다 하는 방식 보다 획기적으로 편하게 진보된 기술이었다고 한다. 컴퓨터의 덩치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전기도 엄청나게 먹었다. 게다가 부품 수명도 짧은 덕택에 주기적으로 망가진 부품을 수리하느라 바빴다고 한다. 컴퓨터가 지금보다 훨씬 컸다는 점은 재미있게도 몇가지 장점(?)도 있었는데, 컴퓨터 내부를 뜯어 다이오드 몇 개를 납땜해 컴퓨터에 새로운 명령어나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가능했다.(!!!) 손톱만큼 작은 크기의 반도체 회로에 수백억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되는 현재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20세기를 풍미한 IBM의 천공카드>


<IBM 1401에서 천공카드로 기록된 프로그램을 구동하는 모습. 그런데 프로그램의 상태가....? ㅋㅋ 천공카드를 자동으로 뚫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책에서는 역시 "해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최초의 해커 그룹은 놀랍게도 MIT의 철도 동아리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철도 동아리 회원 중 철도를 제어하는 전자 시스템에 푹 빠졌던 이들이 컴퓨터에도 손을 뻗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컴퓨터가 굉장히 귀했기 때문에 여러 팀들이 한 컴퓨터를 시간을 쪼개서 사용해야만 했고, 그나마도 굉장히 제한적으로 사용해야만 했으며, 게다가 컴퓨터를 실시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 했다. 지금이야 컴퓨터와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당연하 시대지만, 과거에는 프로그램을 짜서 컴퓨터에 넣어두면 컴퓨터가 이를 열심히 계산하고, 계산이 끝나면 인쇄된 결과를 받아보는 방식으로 컴퓨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컴퓨터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물론 학생들은 이런 일괄처리 시스템에 염증을 느꼈고, 폐쇄적인 컴퓨터 사용 환경을 교회에 빗대 조교들을 "사제"로, 학생들을 "신도"로, 컴퓨터의 실행 결과를 "신의 계시"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동아리 학생들은 곧 학교 구석에 있었던 PDP-1 컴퓨터를 발견하게 된다. PDP-1 컴퓨터는 비록 IBM 컴퓨터보다 성능이 느렸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알게된 해커그룹은 PDP-1을 독차지한다. 특히 PDP 컴퓨터는 IBM 컴퓨터와는 다르게 대화형 컴퓨터, 즉 실시간으로 컴퓨터 사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컴퓨터였기 때문에 해커그룹이 애용했다고 한다.


<PDP-1으로 개발된 게임 Spacewar!의 플레이 영상. 게임은 대표적인 실시간 상호작용 프로그램이다. 해커 그룹 학생들은 날마다 Spacewar!에 갖가지 기능을 추가했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대의 게임 모드 커뮤니티 같은 모습을 느꼈다.>


이런 가내수공업 프로그래밍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1970년대에 최초의 가정용 PC인 알테어 8800이 발매되었을때도 재현된다. 이 컴퓨터는 토글 스위치를 위 아래로 옮기면서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사용자들은 하도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다 보니 손에 멍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해커들은 그렇게 어렵게 프로그래밍해서 고작 LED가 깜빡거리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알테어 8800으로 간단한 게임을 프로그래밍하고 구동하는 모습. 게임이라고 해봤자 빨간 불을 타이밍에 맞춰서 끄는것이 전부이다. 그래도 게임으로서 갖출건 다 갖추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지금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컴퓨터라고 보이지도 않는 기계에 많은 사람들이 금방 매료되었다고 하니 참 신기하다. 한편 이 기기가 세상에 나왔을 무렵, 미국에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 이라는 컴퓨터 동호회가 만들어진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는 주로 알테어 8800를 주제로 해커들끼리 교류를 가졌다고 한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참여한 해커들은 알테어 8800의 램을 더 추가시키고, 텔레타이프를 이용해서 프로그램을 더 쉽게 로드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등 알테어 8800의 기능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한다. 이 홈브루 컴퓨터 클럽은 실리콘 밸리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들이 시작한 알테어 8800 열풍은 이후 여러 사람들이 기업을 차려 가정용 PC를 개발하는에 불을 지폈고, 그 결과 현재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공룡 기업들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빌 게이츠의 최초 성공작이 바로 이 알테어 8800에서 돌아가는 베이직(BASIC) 인터프리터이다. 애플의 스티브 워즈니악 또한 홈브류 컴퓨터 클럽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책 후반부에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부분에서는 EA나 (현재는 망한)아타리 같은 거대 기업도 처음 회사를 세울 때는 창의력을 최대한 보장하고 프리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도록 장려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현재 EA가 비판을 받는 부분과는 전혀 정 반대의 모습이다. 과거 80년대 애플II 컴퓨터로 발매 된 게임들의 조악한 그래픽을 보고 있노라면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상상력이 깊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의 주된 이야기는 게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애플II를 기반으로 하는 일부 게임 회사들의 이야기만 실려있다. 만약 게임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면 현재는 부정적인 단어로 쓰이는 "해커"가 원래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해커의 이미지는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거나 금전적인 이익을 갈취하려는 나쁜 범죄자들이다. 하지만 본래 의미에서 해커란 그냥 컴퓨터 옆에서 죽치고 앉아서 온갖 창의적 방법으로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에 몰두하는 사람, 이렇게 정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해킹"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가 어떤지, "해커 정신"이란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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